'의식의 흐름'을 주장한 근대 심리학의 기본서책
《심리학의 원리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원저 1890)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의 책으로, 인간 심 리가 작동하는 원리를 파고든 심리학 고전이다.
제임스 심리학의 핵심을 알기 쉽게 요약했다.
1890년 제임스는 12년 동안 쓴 《심리학의 원리》를 발표했다.
이 책에서 그는 의식의 유동적인 성질에 주목했다.
그럼으로써 의식을 정적인 개념으로 보았던 그때까지의 사고방식을 개혁했다.
제임스는 의식이란 단편적이지 않은 것이며 끊임없이 흐르는 강의 흐름과 같다고 보았다.
이 책에 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으며, 자아를 I와 Me로 나누는 모델을 제안했다.
윌리엄 제임스는 미국의 심리학자이면서 철학자로 오랫동안 하버드대에서 심리학, 철학, 생리학을 가르쳤다.
미국 최초의 심리학 수업을 개설하고 비공식적인 심리학 실험실을 세우기도 했다.
수차례 강연을 통해 심리학사에 길이 기억될 중요한 명언들을 남긴 제임스는 평생 인간의 정신에는 생물학적 개념으로 해석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제임스의 저서는 현대에도 꾸준히 읽히고 있으며 오늘날 심리학사에서 브렐로 마 분트 Wilhelm Wundt와 함께 '심리학의 아버지',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유명한 소설가 헨리 제임스 Henry James의 형이자 교육학자 존 듀아 ohn Dewey, 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 이크 Edward Lee Thorndike의 스승이기도 하다.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거장 중 한 명이다.
1890년 그는 12년 동안 쓴 《심리학의 원리>를 출간했다. 1,300쪽이 훌쩍 넘는 방대한 양이어서 2년 후 요약판 《한 권으로 읽는 심리학의 원리》를 냈다.
제임스는 '심리학은 의식에 대한 학문이다'라는 정의에 동의하면서도 의식을 자연과학적 측면에서 다루었다.
이전의 심리학에서는 마음을 영혼과 본질이 같다고 생각했지만 근대 심리학에서는 영혼이 아닌 마음이라는 개념 자체로 그 기능을 파악하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임스는 빌헬름 분트와 함께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로 꼽힌다 《한 권으로 읽는 심리학의 원리》에서는 맨 먼저 감각 지각 (시각, 청각, 촉각)을 설명하고 생물학적 측면에서 인간에 대한 실험의 연구성과를 밝힌다.
수많은 심리학 교재가 감각에서 부 터 시작되는 것은 제임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다음 주제는 의식의 흐름, 습관, 자아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개념은 의식을 순간적, 찰나적 구조로 파악했던 기존의 관념과 상반된다.
끊임없는 의식의 흐름을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은 구조가 아닌 기능을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흐름에서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앙리 베르그쏭 Henri-Louis Bergson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논리학에서는 의 식이라는 개념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의식이 변한다는 발상 자체를 다루기 어려워했다(논리학에서는 A=A라는 개 녘이 언제 어디서든 성립되는 것이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임스는 의식의 흐름, 즉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의식의 속성을 역설함으로써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제임스의 영향
심리학에서 기초가 되는 '자아' 개념의 역사는 처음 영국 철학자 존 로크 John Locke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자아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멈춰 있는 확고한 존재로 생각했다. 반면에 제임스는 자아개념을 자신에 대해 관찰하고 인지하는 주 체적 자아인식하는 자)와, 이를 통해 얻은 자신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는 경험적 자아 Me (인식되는 자)로 분류했다. 주체 적 자아가 자아의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부분이라면 경험적 자아는 한걸음 물러서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사회학에도 영향을 미쳐 조지 미드 George Mead의 사회적 자아 이론으로 이어졌다.
제임스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이론으로 '철학자의 이분 법'을 들 수 있다.
철학의 두 가지 큰 주장인 합리론과 경험 론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철학자의 기질에 달려 있다는 도발적인 가설이다. 제임스는 사람의 기질을 유연한 마음과 딱딱하게 굳은 마음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철학자의 기질 이 분법은 칼 구스타프 융을 비롯한 여러 심리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1920년대 성격유형론으로 발전했다.
《심리학의 원리>의 여파
《심리학의 원리》와 《한 권으로 읽는 심리학의 원리>에서 지향한 자연과학적 심리학의 확립은 윌리엄 제임스 입장에 서 볼 때 실패로 끝났다. 심리학은 물리학으로 말하면 갈릴 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이전과 같은 상태라는 것이 그의 견해였으며 자신도 심리학에 관심을 잃었다.
한 권으로 읽는 심리학의 원리의 마지막 장 주제는 심리학과 철학이다.
여기서 제임스는 자유의지 문제를 다루었다. 자연과학은 인과율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초기 조건이 주어지면 결과가 결정되어 반복적으로 실험하고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가르친다.
한편, 자유의지라는 주장은 무 옷의 무엇에 대한 자유인지는 제쳐두더라도 인과율적 세계와 일치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결국 이 책은 심리학 비판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윌리엄 제임스는 세계 적인 심리학 석학으로서 명성이 높아졌고 강연 의뢰도 쇄도했다.
원숙한 50대 시기에 수많은 심리학 강연을 했고 이를 토대로 《선생님이 꼭 알아야 할 심리학 지식 Talks to Teachers on Psychology》을 출간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는 말하기를, 분 석적이고 전문적인 화제는 청중이 싫어하며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장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 다. 그래서 후자를 더 비중 있게 다루었다고 밝힌다.
<선생님이 꼭 알아야 할 심리학 지식>의 1장은 '심리학과 학생을 가르치는 기술이며 2장에서는 다시 '의식의 흐름'을 다룬다. 윌리엄 제임스는 의식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의식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가?'라고 의미 없는 질문을 할 것이 아니라 '어떤 기능이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곧 '행동하는 유기체의 이동'이다.
제임스는 쉽게 말해 지식을 쌓고 특정한 행위를 하는 것 이 의식의 흐름이라고 주장했다. 이론과 실행, 이상주의와 행동주의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의식이 수행하는 기 능을 생각할 때 둘 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청중인 교사들에게 행동을 중시하라고 호소했다. 교육의 중요한 목적은 행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8장 '습관의 법칙'에서는 습관은 제2의 천성이며 교사는 습관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버릇이라고 표현하는 행동은 습관으로 이어진다.
좋든 나쁘든 습관이야말로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제임스는 말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 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아마도 이 구절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좌우명으로 삼는 이 말은 윌리엄 제임스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심리학의 아버지
1842년 제임스는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 무렵은 심리학사에서 중요한 시기다.
그가 태어나고 얼마 후부터 근대 심리학 성립에 토대가 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1859년에는 진화론을 주장하여 심리학에도 큰 영향을 미친 찰스 다윈 Charles Robert Darwin이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을 발표했다.
또한, 1860년에는 구스타프 페히너 Gustav Theodor Fechner가 《정신물리학 요론 Elemente der Psychophysik》을 출간했고 모리츠 라차루스 Moritz Lazarus는 <민족심리학과 언어학 잡지 Zeitschrift für Völkerpsychologie und Sprachwissenschaft>를 창간했다.
1879년은 독일 심리학자 빌헬름 분트가 라이프치히대 에 심리학 실험실을 설립한 해였다.
실질적인 면에서는 지금 과 차이가 있지만, 의미상으로는 심리학 전공생을 조직 적은 로 훈련시켜 졸업시키는 제도가 마련된 해다.
근대 심리학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분트는 매우 많은 작품을 썼지만 이후 그의 저서를 찾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면에 제임스의 저서는 현대에도 꾸준히 읽혀 오늘날 심리학사에서는 제 임스를 분트와 함께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훗날 윌리엄 제임스는 철학으로 관심을 옮겼다. 처음 관심을 보였던 분야는 의학과 생리학이었기 때문에 생리학 심리학 철 학으로 변천 과정을 겪었다고 본다.
→노후에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The Varieties of Reli gious Experience> (1902), 《실용주의 Pragmatism》(1907), <다원적 우 주 A Pluralistic Universe》(1909),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Essays in Radical Empiricism>(1912)을 출간했다.
《다원적 우주》는 1908년 옥스퍼드대 강의를 토대로 쓴 책이다.
이 책에서 제임스는 우주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매 우 다양한 형태를 띤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과학적으로 접 근해서는 우주의 참모습을 제대로 알 수 없고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우주의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험은 다양하기 때문에 저마다의 경험만큼이나 다양한 우주 속에 살고 있다.
이는 서양 사상의 기본인 데카르트 Descartes 식 확고한 '자아'에 대한 반대 명제라 할 수 있다.
윌리엄 제 임스는 마음의 작용뿐 아니라 그 다양성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2. 한번 들은 것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면 행복할까?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The Mind of a Mnemonist), 알렉산드르로마노비치 루리아 Alexander Romanovich Luria(원저 1968)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기억력이 남다른 한 남자의 세계를 그린다.
저자 루리야는 기억력 검사를 받고 싶다며 찾아온 기자 솔로몬 Solomon Shereshevsky와 만난다.
이 남자는 고도로 발달한 공감각 능력의 소유자였다.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사진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꺼내 떠올릴 수 있었다.
루리야는 수십 년 동 안 꾸준히 접촉하며 그 놀라운 기억력의 비밀을 낱낱이 탐구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기억의 병리학에 대한 임상 보고서라는 점과 기 억 전반에 대한 이해 폭을 넓혀 주었다는 점에서 심리학 고 전으로 평가받는다.
탁월한 기억력에 대해 고찰하는 것은 물 론 기억의 현상과 이상발달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을 쓴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야는 러시아 출 신의 세계적인 신경심리학자다.
카잔대학의 카잔 정신분석 협회를 설립했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1923년 그는 사고 과정과 반응시간의 관계 연구로 학 계의 인정을 받고 모스크바 심리학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인지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를 만나 영향을 받았다.
이 연구소에서 인간의 사고 과정을 분석하는 방법을 기술한 '연관 신경 방법 Combined motor method'을 고안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거짓말 탐지기의 원리가 되었다. 1930년대 말 다시 의과대학에 진학해 실어증을 연구했다.
기억이란 무엇일까?
20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갔더니 한 친구가 불쑥 이렇게 물었다.
"어이, 재! 너는 스물다섯 살까지만 살 거라고 하지 않았나?"
'총재'는 고등학교 시절의 별명이다.
이 별명으로 불렸던 적은 평생 그때가 유일하다.
그 시절에 내가 정말 그런 민망한 말을 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동창회에 간 덕분에 고교 3년 동안 내 별명을 부른 친구 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졸업 후 수십 년이 지났으니 냉동된 듯한 기억이다.
그 기억을 동창회의 뜨거운 열기가 녹인 걸까?
총재라는 별명을 듣고 기분이 묘했는데 나도 그 친구에 게 "회장, 잘 지냈어?"라고 무심결에 응답했다.
친구의 옛 별 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모든 동창생이 우리 둘에 게 "총재!", "회장!" 하고 부르면서 인사하는 게 영 어색했다. 기억이란 무엇일까?
기억을 주제로 이야기하면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잘 기억이 안 나네.' 하는 식의 망각을 먼저 떠올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력이 더 좋아져서 뭐든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월이 흘러 뭔가를 점점 잊게 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렇다면 잊지 않는 것은 가능할까? 잊지 않으면 행복할까?
| 기억의 분류
심리학은 기억에 대해 몇 가지 학설을 만들어냈다. 가장 초기에 기억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사람은 독일 심리학자 헤 르만 에빙하우스 Hermann Ebbinghaus였다. 그는 '무의미 철자'라 는 도구를 개발해 '자음, 모음, 자음'의 알파벳 세 문자로 이 루어진 문자열을 얼마나 외울 수 있는지 연구했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외운 내용을 얼마나 망각하는지를 측정하여 만든 그래프를 '에빙하우스 망각곡선'이라고 하는데 이 개념 은 지금까지도 널리 쓰인다.
고전 이론에서는 기억을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으로 분류한다.
'아, 그게 초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 이름이었지?'는 장기 기억이다. '아까 알려준 거래처 전화번호 메모하는 걸 잊었어. 몇 번이더라?'는 단기 기억이다. 이때 복습은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변환하여 정착하도록 만들어준다.
심리학자 조지 밀러 George A. Miller는 <매직 넘버 7±2 Magic Number 7±2>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인간은 한 번에 겨우 5~9개 전화번호만 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화번 호가 7~8자리라는 사실은 상당히 합리적이라 할 만하다.
심리학에서는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를 분류하기도 한다.
"미국 초대 대통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조지 워싱턴"이 라고 대답하는 것은 '재생'이며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워싱 턴인가?"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는 것은 '재인식'이다. 당연히 재인식이 쉽다.
하지만 둘 다 오류가 생길 수 있고 그 오류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Elizabeth F. Loftus는 지적했다.
심리학자들의 기억 분류는 계속되었다.
에스토니아 심리 학자 엔 델 툴링 Endel Tulving은 기억을 '서술 기억'과 '절차 기억으로 나누고 전자를 다시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으로 나누었다. 의미 기억은 단순 암기에 해당하고 일화 기억은 자신의 경험, 일의 흐름과 순서에 대한 기억이다.
영국 심리학자 앨런 배들리 Alan Baddeley는 워킹 메모리(작 업 기억) 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델은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작업 기억을 정착시키기 위해 우리 뇌가 음운 고리(복창)나 시·공간 스케치북(이미지 재현)이라는 보조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가정했다.
일반적으로 기억을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여기는데 '다음 주는 남자친구 생일이다'처럼 미래에 대한 기억도 있다.
이를 전망적 기억이라고 한다. 전생의 기억을 말하는 사 람도 있지만 검증할 수 없어 심리학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 특수한 기억의 소유자
심리학자가 주장한 기억의 학설을 대충 훑어봤는데 이런 학설은 수백 건 이상의 실험 연구를 만들어냈다.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이론으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게 심리학의 자세다. 하지만 실험 연구에는 한계가 있다. '기억력이 뛰 어난 사람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와 같은 의문은 실 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심리학은 감각, 지각, 판단, 사고, 기억 등으로 과 정을 나눠 연구한다.
그것을 이점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만 인간의 전체 모습에 다가갈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루리야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었다.
1920년대에 루리야는 '기억력 검사를 받고 싶다' 며 찾아온 한 남자를 만나 놀라운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솔로몬 남자의 뛰어난 기억력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인격의 또 다른 측면과 솔로몬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 책을 썼다. 그 책이 바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다.
이 책의 주인공 솔로몬은 음악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신문기자가 되었다.
신문기자는 하루 동안에도 취재를 여러 건 해야 할 때가 있다. '데스크'로 불리는 상사가 솔로몬에게 긴 취재처 리스틀을 알려줬는데 그는 필기를 하지 않았다.
불성실한 모습에 상사가 화를 내자 솔로몬은 취재처 리스 틀을 완벽하게 줄줄 외워 보였다.
재인식이 아니었다. 게다가 필기 없이 무엇이든 기억하는 자신의 능력을 특별하게 생 각하지도 않았다.
30자리든 70자리든 문제없이 숫자를 외웠고 10여 년 전 사건도 생생히 기억해 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직관상과 공감각이라는 특이 한 능력 덕분이다. 직관상은 눈이 카메라처럼 작동해 영상을 저장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인은 한 건물을 보고 몇 층인지 바로 알 수 없지만 직관상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이 축적한 직관상을 바탕으로 천천히 셀 수 있다.
공감각이란 하나의 감각 자극에서 여러 감각 자극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인지 과정을 '감각, 지각, 판단, 사고, 기억' 형태로 분할해 생 각하며 각 과정을 나누어서 다루므로 공감각 연구는 어렵다. 또한 많은 사람이 가진 성질이 아니면 연구하기 어렵다는 한 계 때문에 솔로몬과 같은 사람이 가진 특수한 능력은 좀처럼 검토할 수 없다.
참고로 빌라야누르라마찬드란은 공감각 현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 망각이 필요한 이유
루리야 연구의 주인공 솔로몬은 신문기자로 성공하지 못하고 기억술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을 뒷받침하는 직관상과 공감각이 항상 장점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활에 지장을 줄 때도 있었다. 말과 동시에 다른 감각들이 작동한다는 것은 때로 불편한 일이었다.
솔로몬에게는 문장, 특히 시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일 이 무엇보다도 어려웠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는 시적 표현을 생각해 보자. 어려움에 맞서 싸운 끝에 처염한 상황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솔로몬의 경우 이 문장을 읽으면, 누군가가 일을 그르쳐서 상사에게 혼이 나는 이 미지 위에 그가 실제로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이 겹쳐 혼란에 빠지고 만다.
솔로몬은 관련 없이 나열된 단어를 외우는 데 특별한 능력을 보였지만 일상에서 여러 비유를 포함한 풍부한 표현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솔로몬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잊는다는 일이 때로 얼마나 의미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